중앙대학교 제8대 성평등위원회 '뿌리' 성명문 연서명
성평등위원회는 재난 이후의 시대를 그릴 것이다
-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성평등위원회 졸속 폐지에 부쳐
2021년 10월 8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성평등위원회의 폐지로 중앙대학교 학생자치는 재난 상황을 맞았다. 어떤 이들은 성평등위원회 폐지를 두고 자신들의 승리라고 자축한다. 그러나 성평등위원회 폐지는 우리의 실패가 아니라 더 강한 힘으로 대학 내 성평등을 위해 나아갈 동력이 될 것이다.
9월 30일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대한 연서명(총학생회 국으로의 조정)” 안건이 300명 이상의 서명을 얻어 확대운영위원회에 상정되었다. 성평등위원회 폐지안은 이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공론장 하나 없이 확대운영위원회에 던져졌다. 확대운영위원회 전 에브리타임에는 성평등위원회에 대한 허위와 과장이 뒤섞인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던 상황이었다. 사실관계를 파악할 기회나 시간은 없었다.
63대 총학생회 ‘오늘’은 학우들과 소통하는 6월 30일 2분기 간담회에서 효율성을 내세워 답변 개수와 시간을 한정하였고, 성평등위원회는 장애인권위원회와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성폭력 피해를 신고할 수 없었던 경험을 들어 성평등위원회의 독립된 공간 보장 문제를 질문해주신 학우분께 답변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발의자는 “불리한 질문은 피하는 성평등위원회, 학우들과 소통하지 않는 성평등위원회”라는 프레임을 연출했다.
확대운영위원회에서는 발의자가 등장하지 않았으며 발의자의 모든 생각과 발언을 총학생회장이 대신했다. 안건 설명과 안건명이 일치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절차에 문제 제기를 할 때는 “발의자의 의견이라 임의로 수정할 수 없다”면서 발의자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아바타처럼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총학생회장이 스스로 중앙대학교 학생사회의 성평등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했다면, 성평등위원회 폐지 이후 후속 조치에 대해 확대운영위원회에서 학생 대표자들과 논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어야 했다. 하지만 총학생회장은 성평등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욕설과 비방은 방관하면서도 발의자의 신변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찬성 비표를 들었고 가결된 사실에 기뻐했을 뿐이다.
성평등위원회 폐지를 찬성한 59명의 대표자 중 성평등위원회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안건 발의 당사자도, 찬성 토론자도 등장하지 않았다. 성평등위원장 신상발언은 부결되었다. 대안으로 제시된 반성폭력위원회 신설,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준비 TF 설치, 중앙집행위원회 성평등국 신설 안건도 모두 부결되었다. ‘성평등·반성폭력 자치기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평등위원회 폐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설득할 노력이나 대안과 소명을 들을 자세조차 없이 성평등위원회를 폐지시켰다.
비대면 학사운영 장기화 속에서 학생자치가 맡아야 할 공론장의 역할을 에브리타임이 잠식하고, 학생자치는 스스로의 정치적 책임을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에브리타임에 외주 맡김으로써 이를 묵인 내지 동조했다. 에브리타임이라는 익명 커뮤니티에서 악의적으로 편집된 정보를 믿고, 학생자치에 대한 판단을 에브리타임에 맡기는 모습은 선출직 학생 대표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에브리타임이나 SNS를 이용하지 않은 학우들은 지금 성평등위원회가 없어졌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만큼 졸속에 형편없는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어떠한 공론도 없이 익명 커뮤니티에서 증폭된 몇 사람의 입김으로 성평등위원회가 폐지되었다.
민주주의는 다수주의가 아니다. 민주적 학생자치는 학생자치의 역사 위에서 평등하고 안전한 공론장에서의 토론과 숙의로 학우들의 의견을 모아 완성된다. 학생자치의 역사를 부정하며 공론장도 민주적 토론도 어떠한 숙의도 없이 폐지만을 가결하고 모든 대안을 부결한 2021-2학기 확대운영위원회는 무지성을 넘어 반지성의 산물이다. 대표자들은 스스로의 책임을 포기했다. 이 모든 과정이 학생자치의 재난이다.
성평등위원회가 사라진 지금, 총학생회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총학생회 내부에는 성평등 사업을 담당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 인권이나 복지 관련하여 상상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인권복지위원회와 일상복지국, 연대사업국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권복지위원회는 62대 총학생회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가 있었던 곳이며, 2020년 인권복지위원장은 사물함 철거 사업에서 여성 학우의 참여를 배제했다. 일상복지국이 맡게 되면 중앙집행위원회 직할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성평등 사업이 삭제될 수 있다. 연대사업국과 총학생회장단은 그동안 총학생회에 들어온 성평등 문화를 위한 연대 요청을 ‘담당자가 있다’는 말로 성평등위원회에게 떠넘겨왔다. 현재 총학생회의 다른 기구들은 성평등위원회가 하던 성평등 사업을 승계할 전문성이 없고 성평등 의식을 가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총학생회장단의 의식과 양심에 의존할 수도 없다. 63대 총학생회 ‘오늘’ 총학생회장단의 젠더 의식은 형편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카드뉴스에서 사실 관계의 오류와 함께 피해 당사자에 대한 가부장적 프레임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카드뉴스의 여성주의적 관점의 결여에 대해 지적하며 수정을 요구한 것은 성평등위원회였다. ▲63대 총학생회 ‘오늘’의 공약인 인권 규약을 단과대학과 위원회들이 제작하는 권리가이드라인으로 대체하는 것을 막고 총학생회 차원의 성문화된 규약이 존재해야 함을 역설했던 것도 성평등위원회였다. ▲63대 총학생회장단은 62대 부총학생회장 성폭력 사건의 조사위원회에서도 2차 가해 발언을 일삼은 가해자이다. ▲뿐만 아니라, ‘62대 부총학생회장 성폭력 사건에 대한 63대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의 입장문’ 초안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었으며, 조사위가 문제 해결을 위함이 아닌 보여주기식의 껍데기뿐이었다는 것을 드러냈다. 입장문을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피드백하며 학생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든 것도 성평등위원회였다.
이런 노력에도 총학생회는 성평등위원회의 지위와 독립성을 탄압하고 축소하기 바빴다. 성평등위원회는 매번 성평등을 사유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총학생회 실무진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총학생회장단은 성평등위원회와 장애인권위원회의 지위와 관련한 총학생회 회칙 개정 관련 연석회의에서 성평등위원회의 적극적인 논의 개진에도 불구하고 나태하고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국장위원장단은 성평등위원회의 설명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설득할 의무’만 되풀이하며 성평등위원회의 예산을 삭감했다. 그동안 총학생회 내부에서 성평등위원회가 해 온 피드백과, 학생자치를 놓지 말아달라는 절규를 어떤 실무진은 에브리타임에 ‘불평불만하는 자세’로 폄하했다.
또한, 총학생회는 2021-2학기 확대운영위원회 자료집의 성평등위원회 소개에서 성평등위원회가 총여학생회를 계승하였다는 문구가 63대 총학생회와 ‘합의’되지 않았다며 삭제를 요구하고 관철시켰다. 성평등위원회가 총여학생회를 계승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2013-2학기 전학대회에서 결정했고, 학내언론이 존중해왔으며, 학생사회가 받아들였다. 합의를 무시한 것은 총학생회이다. 총학생회는 성평등위원회를 탄압하고 싶은 마음을 ‘합의’로 포장했다. 끊임없이 존재와 정당성을 합의받아야 하는 쪽과, 합의를 무기로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이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이 차이를 권력이라고 부른다.
비대면 학사가 지속되면서 학생사회는 물리적인 학교 공간을 잃어버렸다. 그동안 63대 총학생회 ‘오늘’은 비대면 환경을 적극 이용하며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고 학우를 기만했다. 학우들을 대상으로 하는 간담회나 학생총회에서 버튼 하나로 학우들의 목소리를 삭제했다. 채팅을 치지 못하게 했고, 음소거를 풀지 못하게 했고, 종국에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질문의 개수와 발언 시간을 최소화했다. 대면 환경이었다면 학우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시간이 끝났다며 회의장에서 쫓아낸 것이나 다름없다. 2021-1학기에는 찬성, 반대, 기권을 세기 어렵다는 이유로 전학대회의 표결을 조작했다. 성평등위원회는 총학생회의 거대한 침묵 속에서 증거를 모아 표결 조작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총학생회의 사과를 이끌어냈다.
총학생회 내부의 폭력은 ‘우리는 하나’라는 동지의식 아래 묵과되었다. 총학생회는 학우들이 볼 수 없는 스태프 현장에서 어떤 학우가 발언할 때 “저 새끼 목소리도 듣기 싫다”라고 비방하고 학우의 발언권을 조롱했다. 학내언론 UBS가 학생총회의 비민주적 사태를 취재하러 왔을 때는 “소주병으로 머리를 치고 싶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관계자들끼리의 내부결속을 바탕으로 학생사회를 무시해 온 총학생회와 달리, 성평등위원회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진행했던 전략적 논의는 어느새 총학생회를 배신하고 학생사회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음모론이 되어 있었다.
성평등위원회를 꾸준히 탄압하는 총학생회였지만, 그럼에도 성평등위원회는 총학생회의 일원이라는 사명으로 총학생회를 놓지 않았다. 63대 총학생회 ‘오늘’의 탈선을 막기 위해 내부에서 자정작용을 꾸준히 한 것은 성평등위원회였다. 그러나 총학생회장단은 성평등위원회를 마치 자기들끼리의 평화를 깨는 반동분자인 것마냥 취급하고 끝내 성평등위원회를 없애는 데 일조했다. 총학생회의 유일한 양심이었던 성평등위원회를 쫓아낸 지금, 총학생회는 무슨 자격으로 자신들이 인권 문제를 다루겠다는 자신감을 보인단 말인가?
2018년 연이은 총여학생회 폐지는 분명한 안티페미니즘의 물결이긴 했지만, 최소한 학생자치의 언어를 사용했다. 총여학생회의 페미니즘 학생자치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했을지라도,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만큼은 ‘총여학생회의 실무를 맡을 인력의 부족’과 ‘모든 학생에게 주어지지 않는 투표권’처럼 학생자치에서 논의할 만한 언어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더 노골적인 폭력을 마주하고 있다. 성평등위원회를 폐지하기 위한 안건 설명에는 성평등위원회가 “여성주의인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특정 성별만 생각하는 편향된 방향성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며 명백한 반페미니즘의 언어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확대운영위원회는 이 안건을 토론 없이 가결했다. 올바른 학생자치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포기한 우리 학생사회는 더 이상 페미니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노력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동안 쌓아온 학생자치의 언어가 인터넷 커뮤니티의 폭력적이고 노골적인 언어로 대체된 것이다.
이 사태는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학생자치기구들에 대한 공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는 단순히 중앙대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많은 학내 소수자 기구, 인권 기구 탄압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성평등위원회의 폐지를 단지 우리의 실패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투쟁의 원동력이자 경험으로 이어갈 것이다.
성평등위원회 폐지 이후에도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반대하는 연서명이 에브리타임 상정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늘고 있다. 성평등위원회에 연대하는 자보들이 나오고 있다. 다양한 대학 단체들에서 성평등위원회의 대응과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오고 있다. 이 필요와 기대의 목소리에 성평등위원회는 충실히 응할 것이다. 인권과 평등을 위한 기구가 아무런 숙고의 과정 없이 사라질 수 없도록, 전보다 더 독립적인 자치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학생자치를 놓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대학 내 성평등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성평등한 대학 사회를 위해 싸우고 있다. 싸울 것이다. 혐오보다 우아하고 탄압보다 건강한 행보로 재난 이후의 시대를 그릴 것이다.
의혈중앙 서울캠퍼스 성평등위원회
제8대 성평등위원회 뿌리
-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성평등위원회 졸속 폐지에 부쳐
2021년 10월 8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성평등위원회의 폐지로 중앙대학교 학생자치는 재난 상황을 맞았다. 어떤 이들은 성평등위원회 폐지를 두고 자신들의 승리라고 자축한다. 그러나 성평등위원회 폐지는 우리의 실패가 아니라 더 강한 힘으로 대학 내 성평등을 위해 나아갈 동력이 될 것이다.
9월 30일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대한 연서명(총학생회 국으로의 조정)” 안건이 300명 이상의 서명을 얻어 확대운영위원회에 상정되었다. 성평등위원회 폐지안은 이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공론장 하나 없이 확대운영위원회에 던져졌다. 확대운영위원회 전 에브리타임에는 성평등위원회에 대한 허위와 과장이 뒤섞인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던 상황이었다. 사실관계를 파악할 기회나 시간은 없었다.
63대 총학생회 ‘오늘’은 학우들과 소통하는 6월 30일 2분기 간담회에서 효율성을 내세워 답변 개수와 시간을 한정하였고, 성평등위원회는 장애인권위원회와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성폭력 피해를 신고할 수 없었던 경험을 들어 성평등위원회의 독립된 공간 보장 문제를 질문해주신 학우분께 답변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발의자는 “불리한 질문은 피하는 성평등위원회, 학우들과 소통하지 않는 성평등위원회”라는 프레임을 연출했다.
확대운영위원회에서는 발의자가 등장하지 않았으며 발의자의 모든 생각과 발언을 총학생회장이 대신했다. 안건 설명과 안건명이 일치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절차에 문제 제기를 할 때는 “발의자의 의견이라 임의로 수정할 수 없다”면서 발의자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아바타처럼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총학생회장이 스스로 중앙대학교 학생사회의 성평등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했다면, 성평등위원회 폐지 이후 후속 조치에 대해 확대운영위원회에서 학생 대표자들과 논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어야 했다. 하지만 총학생회장은 성평등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욕설과 비방은 방관하면서도 발의자의 신변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찬성 비표를 들었고 가결된 사실에 기뻐했을 뿐이다.
성평등위원회 폐지를 찬성한 59명의 대표자 중 성평등위원회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안건 발의 당사자도, 찬성 토론자도 등장하지 않았다. 성평등위원장 신상발언은 부결되었다. 대안으로 제시된 반성폭력위원회 신설,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준비 TF 설치, 중앙집행위원회 성평등국 신설 안건도 모두 부결되었다. ‘성평등·반성폭력 자치기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평등위원회 폐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설득할 노력이나 대안과 소명을 들을 자세조차 없이 성평등위원회를 폐지시켰다.
비대면 학사운영 장기화 속에서 학생자치가 맡아야 할 공론장의 역할을 에브리타임이 잠식하고, 학생자치는 스스로의 정치적 책임을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에브리타임에 외주 맡김으로써 이를 묵인 내지 동조했다. 에브리타임이라는 익명 커뮤니티에서 악의적으로 편집된 정보를 믿고, 학생자치에 대한 판단을 에브리타임에 맡기는 모습은 선출직 학생 대표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에브리타임이나 SNS를 이용하지 않은 학우들은 지금 성평등위원회가 없어졌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만큼 졸속에 형편없는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어떠한 공론도 없이 익명 커뮤니티에서 증폭된 몇 사람의 입김으로 성평등위원회가 폐지되었다.
민주주의는 다수주의가 아니다. 민주적 학생자치는 학생자치의 역사 위에서 평등하고 안전한 공론장에서의 토론과 숙의로 학우들의 의견을 모아 완성된다. 학생자치의 역사를 부정하며 공론장도 민주적 토론도 어떠한 숙의도 없이 폐지만을 가결하고 모든 대안을 부결한 2021-2학기 확대운영위원회는 무지성을 넘어 반지성의 산물이다. 대표자들은 스스로의 책임을 포기했다. 이 모든 과정이 학생자치의 재난이다.
성평등위원회가 사라진 지금, 총학생회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총학생회 내부에는 성평등 사업을 담당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 인권이나 복지 관련하여 상상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인권복지위원회와 일상복지국, 연대사업국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권복지위원회는 62대 총학생회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가 있었던 곳이며, 2020년 인권복지위원장은 사물함 철거 사업에서 여성 학우의 참여를 배제했다. 일상복지국이 맡게 되면 중앙집행위원회 직할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성평등 사업이 삭제될 수 있다. 연대사업국과 총학생회장단은 그동안 총학생회에 들어온 성평등 문화를 위한 연대 요청을 ‘담당자가 있다’는 말로 성평등위원회에게 떠넘겨왔다. 현재 총학생회의 다른 기구들은 성평등위원회가 하던 성평등 사업을 승계할 전문성이 없고 성평등 의식을 가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총학생회장단의 의식과 양심에 의존할 수도 없다. 63대 총학생회 ‘오늘’ 총학생회장단의 젠더 의식은 형편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카드뉴스에서 사실 관계의 오류와 함께 피해 당사자에 대한 가부장적 프레임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카드뉴스의 여성주의적 관점의 결여에 대해 지적하며 수정을 요구한 것은 성평등위원회였다. ▲63대 총학생회 ‘오늘’의 공약인 인권 규약을 단과대학과 위원회들이 제작하는 권리가이드라인으로 대체하는 것을 막고 총학생회 차원의 성문화된 규약이 존재해야 함을 역설했던 것도 성평등위원회였다. ▲63대 총학생회장단은 62대 부총학생회장 성폭력 사건의 조사위원회에서도 2차 가해 발언을 일삼은 가해자이다. ▲뿐만 아니라, ‘62대 부총학생회장 성폭력 사건에 대한 63대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의 입장문’ 초안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었으며, 조사위가 문제 해결을 위함이 아닌 보여주기식의 껍데기뿐이었다는 것을 드러냈다. 입장문을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피드백하며 학생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든 것도 성평등위원회였다.
이런 노력에도 총학생회는 성평등위원회의 지위와 독립성을 탄압하고 축소하기 바빴다. 성평등위원회는 매번 성평등을 사유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총학생회 실무진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총학생회장단은 성평등위원회와 장애인권위원회의 지위와 관련한 총학생회 회칙 개정 관련 연석회의에서 성평등위원회의 적극적인 논의 개진에도 불구하고 나태하고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국장위원장단은 성평등위원회의 설명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설득할 의무’만 되풀이하며 성평등위원회의 예산을 삭감했다. 그동안 총학생회 내부에서 성평등위원회가 해 온 피드백과, 학생자치를 놓지 말아달라는 절규를 어떤 실무진은 에브리타임에 ‘불평불만하는 자세’로 폄하했다.
또한, 총학생회는 2021-2학기 확대운영위원회 자료집의 성평등위원회 소개에서 성평등위원회가 총여학생회를 계승하였다는 문구가 63대 총학생회와 ‘합의’되지 않았다며 삭제를 요구하고 관철시켰다. 성평등위원회가 총여학생회를 계승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2013-2학기 전학대회에서 결정했고, 학내언론이 존중해왔으며, 학생사회가 받아들였다. 합의를 무시한 것은 총학생회이다. 총학생회는 성평등위원회를 탄압하고 싶은 마음을 ‘합의’로 포장했다. 끊임없이 존재와 정당성을 합의받아야 하는 쪽과, 합의를 무기로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이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이 차이를 권력이라고 부른다.
비대면 학사가 지속되면서 학생사회는 물리적인 학교 공간을 잃어버렸다. 그동안 63대 총학생회 ‘오늘’은 비대면 환경을 적극 이용하며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고 학우를 기만했다. 학우들을 대상으로 하는 간담회나 학생총회에서 버튼 하나로 학우들의 목소리를 삭제했다. 채팅을 치지 못하게 했고, 음소거를 풀지 못하게 했고, 종국에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질문의 개수와 발언 시간을 최소화했다. 대면 환경이었다면 학우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시간이 끝났다며 회의장에서 쫓아낸 것이나 다름없다. 2021-1학기에는 찬성, 반대, 기권을 세기 어렵다는 이유로 전학대회의 표결을 조작했다. 성평등위원회는 총학생회의 거대한 침묵 속에서 증거를 모아 표결 조작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총학생회의 사과를 이끌어냈다.
총학생회 내부의 폭력은 ‘우리는 하나’라는 동지의식 아래 묵과되었다. 총학생회는 학우들이 볼 수 없는 스태프 현장에서 어떤 학우가 발언할 때 “저 새끼 목소리도 듣기 싫다”라고 비방하고 학우의 발언권을 조롱했다. 학내언론 UBS가 학생총회의 비민주적 사태를 취재하러 왔을 때는 “소주병으로 머리를 치고 싶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관계자들끼리의 내부결속을 바탕으로 학생사회를 무시해 온 총학생회와 달리, 성평등위원회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진행했던 전략적 논의는 어느새 총학생회를 배신하고 학생사회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음모론이 되어 있었다.
성평등위원회를 꾸준히 탄압하는 총학생회였지만, 그럼에도 성평등위원회는 총학생회의 일원이라는 사명으로 총학생회를 놓지 않았다. 63대 총학생회 ‘오늘’의 탈선을 막기 위해 내부에서 자정작용을 꾸준히 한 것은 성평등위원회였다. 그러나 총학생회장단은 성평등위원회를 마치 자기들끼리의 평화를 깨는 반동분자인 것마냥 취급하고 끝내 성평등위원회를 없애는 데 일조했다. 총학생회의 유일한 양심이었던 성평등위원회를 쫓아낸 지금, 총학생회는 무슨 자격으로 자신들이 인권 문제를 다루겠다는 자신감을 보인단 말인가?
2018년 연이은 총여학생회 폐지는 분명한 안티페미니즘의 물결이긴 했지만, 최소한 학생자치의 언어를 사용했다. 총여학생회의 페미니즘 학생자치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했을지라도,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만큼은 ‘총여학생회의 실무를 맡을 인력의 부족’과 ‘모든 학생에게 주어지지 않는 투표권’처럼 학생자치에서 논의할 만한 언어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더 노골적인 폭력을 마주하고 있다. 성평등위원회를 폐지하기 위한 안건 설명에는 성평등위원회가 “여성주의인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특정 성별만 생각하는 편향된 방향성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며 명백한 반페미니즘의 언어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확대운영위원회는 이 안건을 토론 없이 가결했다. 올바른 학생자치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포기한 우리 학생사회는 더 이상 페미니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노력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동안 쌓아온 학생자치의 언어가 인터넷 커뮤니티의 폭력적이고 노골적인 언어로 대체된 것이다.
이 사태는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학생자치기구들에 대한 공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는 단순히 중앙대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많은 학내 소수자 기구, 인권 기구 탄압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성평등위원회의 폐지를 단지 우리의 실패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투쟁의 원동력이자 경험으로 이어갈 것이다.
성평등위원회 폐지 이후에도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반대하는 연서명이 에브리타임 상정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늘고 있다. 성평등위원회에 연대하는 자보들이 나오고 있다. 다양한 대학 단체들에서 성평등위원회의 대응과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오고 있다. 이 필요와 기대의 목소리에 성평등위원회는 충실히 응할 것이다. 인권과 평등을 위한 기구가 아무런 숙고의 과정 없이 사라질 수 없도록, 전보다 더 독립적인 자치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학생자치를 놓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대학 내 성평등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성평등한 대학 사회를 위해 싸우고 있다. 싸울 것이다. 혐오보다 우아하고 탄압보다 건강한 행보로 재난 이후의 시대를 그릴 것이다.
의혈중앙 서울캠퍼스 성평등위원회
제8대 성평등위원회 뿌리